
최불암 별세, 수사반장부터 전원일기까지 국민 배우로 남긴 발자취
배우 최불암이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67년 연기 인생과 그가 남긴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사랑받은 최불암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넘나들며 한국 대중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연기뿐 아니라 '한국인의 밥상' 진행과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까지 이어온 그의 삶을 돌아본다.
최불암 별세, 67년 연기 인생을 마무리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배우로 사랑받아 온 최불암이 2026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다. 1959년 연극 '햄릿'을 통해 무대에 오른 뒤 약 67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오가며 활동한 그는 한국 방송과 공연예술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최불암이 TV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67년 서울중앙방송, 현재의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선발되면서부터다. 당시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할을 맡으며 방송 연기를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도 노년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연기자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갔다.
그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배역의 크기를 가리지 않는 배우로도 알려졌다. 주연뿐 아니라 조연과 노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나이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인물을 연기하며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꾸준한 활동은 오랜 세월 대중의 신뢰를 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밑바탕이 됐다.
수사반장 박영한과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국민 배우 등극
최불암을 전국적인 스타로 만든 대표작은 MBC 드라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다. 그는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수사반장'에서 박영한 반장 역을 맡아 한국형 수사 드라마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 오랜 기간 시청자와 함께한 작품 속에서 보여준 차분하고 인간적인 수사반장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 역으로 활약했다. 22년 동안 이어진 장수 드라마에서 최불암은 농촌 마을의 어른이자 가족을 보듬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했다.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은 그에게 '국민 아버지'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안겨줬다.
김혜자와 함께한 부부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개구리 남편'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으며, 특히 '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 역할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가 있을 정도로 두 배우의 호흡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와 연극까지, 장르를 넘나든 폭넓은 연기 활동
최불암의 활동 무대는 TV 드라마에만 머물지 않았다. 영화 '빛과 그림자', '여마적', '만종', '파계', '영자의 전성시대', '왕십리', '진짜진짜 좋아해',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스크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기쁜 우리 젊은 날', '까불지마', '잠복근무' 등 시대를 달리하는 영화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연기 역시 최불암의 강점이었다.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고, '여명의 눈동자', '미망', '영웅시대', '궁', '식객' 등 여러 인기 드라마에서도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노년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온 점은 그의 연기 경력을 설명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도 이어졌다. 2018년에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 출연하며 약 25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같은 해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 특별 출연했고, 2024년에는 '수사반장'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대표작과 연결되는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반가움을 안겼다.
한국인의 밥상과 최불암 시리즈, 친근한 국민 배우의 얼굴
최불암은 연기자뿐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오랫동안 시청자와 만났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부터 2025년까지는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전국 각지의 음식과 사람,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따뜻한 시선은 프로그램의 중요한 상징이 됐다.
특유의 웃음소리도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고개를 젖히며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은 최불암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고, 많은 방송인과 연예인이 그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그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는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가 됐다. 드라마 속에서는 가족과 이웃을 보듬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고,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음식을 소개하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올해 5월에는 60여 년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가 2부작으로 공개돼 다시 한번 그의 발자취를 조명했다. 당시에는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싶다는 가족의 요청으로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지는 않았다.
정계 활동과 김민자와의 결혼, 무대 밖 최불암의 삶
최불암은 한때 연기 활동을 잠시 멈추고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2년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1996년까지 의정 활동을 했다. 이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같은 해 드라마 '전원일기'를 통해 연기 활동을 다시 이어갔다.
정계 진출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인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불암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서 활동했으며, 배우로서도 정주영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인물을 연기했다. '야망의 25시'와 '영웅시대' 등에서 기업가의 삶을 다룬 인물을 맡아 연기와 현실의 인연을 이어갔다.
가족과 함께한 삶에서는 배우 김민자와의 인연이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4년간 교제한 끝에 1970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최불암은 KBS 드라마에 출연하던 김민자에게 호감을 느낀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연극 '환절기' 등에서 함께 활동하며 사랑을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수많은 수상과 사회공헌 활동, 마지막 장례 일정
최불암은 오랜 연기 활동을 통해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과 연극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대종상영화제에서는 남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98년 국민훈장 목련장에 이어 2014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수사반장'에서 경찰의 모습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한 공로로 1972년 명예 경찰에 처음 위촉됐다. 이후 2024년에는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에 위촉됐다. 작품 속 역할을 넘어 실제 경찰 조직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온 셈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펼쳤다. 미아 찾기와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 특별 생방송에 참여했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과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 등을 맡아 어린이들의 권익과 미래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이러한 삶을 기리기 위해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진행된다.
장례위원장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맡으며,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 씨, 딸 동비 씨가 있다. 장례위원회의 구체적인 명단과 역할은 최종 확정 후 발표될 예정이다.
최불암은 수사반장 박영한으로 정의를 이야기했고,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가족과 이웃의 정을 전했다. 또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전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소개했다. 오랜 시간 대중 곁에서 웃음과 위로를 전한 그의 작품과 목소리는 앞으로도 많은 시청자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