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한 가족이 20여 년 동안 조현병을 마주한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이 직접 자신의 가족을 촬영한 이 영화는 조현병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가족의 선택과 침묵, 그리고 치료를 미루는 과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기록인 만큼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관객에게도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긴다.
한 가족에게 찾아온 조현병, 모든 기록의 시작
영화의 배경은 1983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다.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감독의 누나는 갑작스럽게 조현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는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고, 이후에도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집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선택을 이어갔다.
당시 여덟 살 어린 동생이었던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은 가족이 겪는 시간을 지켜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견뎌야 했다. 그는 1992년부터 가족의 일상을 음성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그렇게 축적된 20년이 넘는 기록이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기반이 됐다.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문제를 숨기고 사회와 단절시키는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밝혔다.
조현병보다 더 무거웠던 가족의 선택
영화는 조현병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조현병을 마주한 가족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후지노 감독의 부모는 모두 의사이자 연구자였지만, 딸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모는 딸이 조현병 환자인 척한다고 믿었고, 의료기관보다 집에서 해결하려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특별한 해설 없이 기록 영상 그대로 담아내며 관객이 직접 상황을 바라보도록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나의 상태는 점차 악화됐고, 가족의 일상은 외부와 단절된 채 반복됐다. 집 안에 자물쇠가 설치되고 대화가 단절되는 모습은 오랜 시간 누적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는다.
20년 동안 이어진 기록이 특별한 이유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족을 촬영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누나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녹음을 시작했고, 이후 가족 행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영상도 남기게 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화면은 전문적인 연출보다 실제 생활을 그대로 담아낸 기록에 가깝다. 오랜 세월 이어진 촬영은 한 가족의 변화뿐 아니라 시간이 쌓이며 달라지는 분위기와 관계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후 감독은 영화를 공부하고 제작사를 설립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누나가 치료를 받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가족의 동의를 얻어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정했다.
특히 치료 이후 누나가 감독의 질문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답을 하는 장면은 긴 시간 이어졌던 기록 속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일본에서 입소문을 타며 독립영화 흥행 기록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2024년 12월 일본 개봉 당시 단 4개 상영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상영관은 8주 만에 100여 개 이상으로 확대됐고, 흥행수익 1억 엔을 돌파하며 일본 미니시어터 흥행 사례로 주목받았다.
작품은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타이완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 초청됐으며, 국내에서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가족의 현실을 꾸밈없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다큐멘터리라는 사실 자체가 더욱 큰 긴장감과 무게를 전달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질문
영화 제목인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단순히 감독 개인의 후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치료는 언제 시작됐어야 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는지를 관객에게 함께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작품은 조현병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족이 오랜 시간 동안 겪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치료와 이해, 사회적 편견, 가족의 책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후지노 감독은 연로해진 아버지에게 "다시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작품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마무리되지만,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도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오래 품게 된다. 이러한 점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단순한 가족 다큐멘터리를 넘어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