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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한국영화의 역사로 남은 이름

by crystal_14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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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곧 삶이었던 국민 배우 안성기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던 중 목에 걸려 쓰러졌고,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5살 아역 데뷔… 180여 편의 필모그래피

 

안성기는 다섯 살이던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후 ‘고래사냥’, ‘투캅스’, ‘태백산맥’, ‘취화선’, ‘실미도’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이끌며 충무로의 중심에 섰다.

한국영상자료원 기준 출연 영화는 180여 편. 거지부터 왕, 소시민과 지식인, 형사와 성직자까지 그가 연기하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었다.


한국 최초 해외 영화제 연기상 수상

소년 시절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에서 소매치기 역을 맡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 배우 최초 해외 영화제 연기상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나는 발랑 까진 아이였다” – 생전 인터뷰 중

시대를 품은 배우

 

안성기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시대를 연기한 배우였다.

도시 빈민, 빨치산 지식인, 베트남전 참전 군인,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을 지닌 인물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스크린에 새겨 넣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만다라’, ‘하얀전쟁’, ‘화려한 휴가’, ‘부러진 화살’은 그의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암 투병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현장에

안성기는 수년간 혈액암 투병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에 암 투병 중 출연하며 연기에 대한 책임과 열정을 끝까지 지켰다.

“연기자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연기는 이미 한국영화사에 남았다.


배우를 넘어 영화인의 길

그는 배우에 머물지 않았다.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신인 영화인 양성과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묵묵히 헌신했다.

2013년 은관문화훈장, 2023년 4·19 민주평화상은 그의 삶을 증명하는 훈장이었다.


영화인장으로 떠나는 마지막 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한국영화는 그를 통해 시대를 기억했고, 관객은 그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국민 배우 안성기. 그의 이름은 이제 한국영화 그 자체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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