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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대모’ 배우 윤석화 별세…대학로에서 마지막 인사

by crystal_14 202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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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대모’로 불린 배우 윤석화가 지난 19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노제가 열린 21일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 앞은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배웅하려는 동료 예술인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한예극장은 고인이 생전에 운영했던 설치극장 ‘정미소’의 전신으로, 윤석화의 연극 인생이 깊게 새겨진 공간이다.


“연극은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오전 10시 엄수된 노제에서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이렇게 기억했다.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습니다. ‘연극이란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서 함께 무대에 섰던 배우 박정자와 손숙은 손을 맞잡은 채 눈물을 훔쳤다.

배우 최정원, 배해선, 박건형 등 후배 배우들은 고인의 애창곡이던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추모곡으로 불렀다.


불꽃 같은 연기 인생

윤석화는 1956년 서울 출생으로,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그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작품은 1982년 초연된 연극 <신의 아그네스>였다.

이 작품은 국내 연극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우며 관객 6만5000명을 동원했고, 윤석화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연극계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하나를 위한 이중주> 등 수많은 명작 무대에 섰다.


뮤지컬·영화·제작자로서의 활동

 

뮤지컬 무대에서도 윤석화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상징인 <명성황후>의 초대 명성황후 역을 맡았고, <사의 찬미>, <마스터 클래스> 등에 출연했다.

영화 <레테의 연가>, <봄눈>에도 모습을 남겼다.

연기뿐 아니라 제작자로 변신해 ‘돌꽃컴퍼니’를 설립했고,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 발행인으로도 활동했다.


입양 문화 확산과 삶의 신념

 

윤석화는 2003년과 2007년 각각 아들과 딸을 입양하며 국내 입양 문화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 공로로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는 생전 칼럼에서 이렇게 연극 인생을 돌아봤다.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찬란한 해가 되듯 모든 날이 새 날입니다.”

마지막 무대와 남겨진 울림

 

윤석화는 2022년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2023년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생전 마지막 무대가 됐다.

정부는 연극계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기려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무대 위에서 던진 질문들은 이제 관객과 후배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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