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인 아파트 논란, 배달기사 출입 절차 갈등 확산…쟁점과 현장 반응

일부 고급 아파트 단지의 까다로운 출입 절차를 둘러싸고 배달기사들과 입주민 간 갈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달기사들은 헬멧 탈의, 개인정보 작성, 화물용 엘리베이터 이용, 장거리 도보 이동 등을 요구하는 아파트를 온라인에서 이른바 '천룡인 아파트'라고 부르며 관련 지도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배달기사의 노동환경과 개인정보 보호, 공동주택의 보안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천룡인 아파트' 지도
'천룡인 아파트'라는 표현은 인기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특권계급인 '천룡인'에서 유래한 인터넷 용어다. 배달기사들 사이에서는 출입 절차가 까다롭거나 일반적인 배달 환경과 크게 다른 아파트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전국의 고가 아파트 단지 50여 곳이 표시된 지도가 공유되며 관심을 모았다. 해당 지도에는 배달 과정에서 불편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온라인 유행을 넘어 배달기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출입 절차와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배달기사들이 호소하는 현장 어려움
논란의 배경에는 일부 아파트에서 요구하는 출입 절차가 있다. 배달기사들은 헬멧을 벗거나 신분증 확인을 받고, 개인정보를 작성하거나 오토바이 열쇠를 맡기도록 요구받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한다.
일부 단지에서는 일반 엘리베이터 대신 화물용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도록 안내하거나 오토바이 출입을 제한해 정문에 주차한 뒤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대 배달기사 B씨는 단지 입구에서 배송 장소까지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하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곳도 있다며 노동 강도에 비해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배달기사들은 이러한 절차가 반복될 경우 배달 시간이 길어지고 업무 효율도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입 절차와 개인정보 수집 논란
최근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배달기사가 출입 과정에서 헬멧을 벗고 개인정보를 작성하도록 요구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온라인에서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입주민이 직접 로비로 내려와 음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면 공동주택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일정 수준의 출입 관리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신분증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과 주민등록번호를 적거나 신분증 사본을 보관하는 것은 법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설명한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신분증 사본을 뜨거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도록 하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거부하면 배달이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면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달 거절이 쉽지 않은 이유
일각에서는 배달이 어려운 아파트라면 주문을 거절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배달기사들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배달 플랫폼에서는 수락률과 업무 실적 등이 기사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등급이 낮아질 경우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의 주문을 우선 배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기사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출입 절차가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파트라도 쉽게 배달을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 관련 진정을 제기했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랫폼사의 역할과 향후 관심 포인트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지부장은 배달기사 개인이 아파트 출입 절차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플랫폼사가 해당 아파트의 출입 절차를 사전에 안내하거나 분쟁 발생 시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달 플랫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라이더들이 현장에서 부당한 상황을 겪을 경우 법률 상담과 심리 상담, 산재보험 안내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부당한 대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천룡인 아파트' 논란은 공동주택의 보안 관리와 배달기사의 노동환경, 개인정보 보호라는 여러 쟁점이 함께 맞물려 있다. 앞으로 아파트 관리 주체와 배달 플랫폼, 배달기사 간의 원활한 협의와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